올 2월인가 수십 년의 숙원이던 오디오를 갖추기 시작했다.
당시 여러 경로를 거쳐 줄리아드를 들였다. 하지만 그때는 관이 EL-34였고 스피커는 제이엠랩. 무언가 부족했다. 매칭이 별로 였으리라.
하지만 탄노이를 들이면서 줄리어드의 관이 kt-88로 바뀌었다. 이제 거의 한달이 되어간다. 곧바로 소감을 쓰려하였지만 성급한 마음을 누르고 기다리기로 했다. 이제 한달. 시스템이 안정기에 접어들고 내 귀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한다.
앰프, 플레이어, 스피커 세 부분 중 두 개가 바뀌어버린 그날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은 비가 약간 뿌리고 있었다. ‘음음~ 스피커에 물 묻으면 안되는데.... 은근히 걱정이... 무거운? 스피커를 정성껏 싣고 와주신 정사장님의 차에서 내려서 들고 올라오는 기분은 행여나 적을세라 부딪칠세라 걱정이 되었다. ’비가 오면 안좋죠?‘ 하고 물었지만, 걱정도 안하는 정사장님이었다. 끙끙거리고 올라온 스피커를 아래서부터 열고 세웠다.
그리고는 드디어 설레이는 마음으로 이 음악, 저 음악을 들었다. 음반을 바꿀 때마다 그 음반이 보여주는 특성과 담겨진 연주들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이 첫 느낌이었다. 음색과 주파수 대역들을 모두 잘 표현하고 있었다. 단단한 원목통에서 나오는 저음도 감동적이려니와 현은 물론, 악기가 가진 저음과 고음을 충분히 잘 표현해주고 있었다. 정말 신기했다. 이렇게 다양한 범위의 소리를 다 잘 표현해준다는 것은 감동이었다. 믿음직스러웠다. 어떤 시디를 걸어도 그 시디에 녹음된 내용을 잘 나타내주겠구나 하는 신뢰감이 들었다.
그날 먼 걸음을 마다않고 찾아와 주시고 조언도 주신 이창주지사장님과 임오차원장, 정사장님이 어느 덧 청취를 나누고 점검해주고 계셨다. 삼합을 대접 해드리지 못해 섭섭했지만 다음을 기약한다. 스피커가 아직 제자리로 앉지 않은 상태로 손님들이 돌아가고 혼자 남았다.
’이제 맘껏 들어봐야지....‘ 다소는 설레는 마음과 기대, 혹시나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웬걸? 서서히 분위기는 무르익어가고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가 마치 커다란 저택에서 울리는 피아노처럼 생생하고 아늑한게 아닌가. 하나의 장면을 떠오른다. 불이 꺼지고 촛불만 은은한 커다란 저택에서 한 젊은 피아니스트가 흠모하는 여인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쇼팽을 연주하고 있다.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이었다. 포도주(이것이 기분을 고양시켜 아름답게 들리게 했을 수도 있다)를 마시면서 들었던 그 날의 기분은 잊지 못할 감동이 될 것이다.
이 후에도 줄리어드와 탄노이의 연주를 듣노라면 어떤 분위기인가가 떠오르고 그 기분에 젖어든다. 연주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잠시 꿈에서 깨어, 이것저것을 걸어보며 충분히 스피드에 응답을 하는지, 무대감은 살아나는지, 소리는 실제에 가까운지, 등등을 귀담아 들어봤다. 파워와 응답성이 훌륭했다.
다음 날에서야 스피커를 뒤로 밀어 자리를 잡았다. 우리 집은 넓지 않은 아파트 거실로 청취실의 세팅이 전혀 되어있지 않다. 연주를 만끽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서서히 탄노이는 적응이 되어갔고 줄리어드는 믿음직스러운 지휘를 하고 있었다. 컨서트홀 기분이 든다. 일일이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몇 일을 들었다. 이젠 수퍼트위터를 연결해서 들어보자. 막귀로서는 분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지만 하나 하나의 소리들이 더 완성되어 들리고 선명해지며 구분이 뚜렷해지고 무대감과 현장감, 실제감이 살아난다. 세헤라자드를 들을 때에는 정말 오케스트라를 감상하는 정취에 푹 빠져들 수 있다.
탄노이 컨서트홀에서 열리는 연주회는 기가 막히다. 지휘에 줄리어드, 피아노는 세르킨, 오케스트라는 런던심포니, 그렇게 연주회는 열린다. 조그맣게 방음도 잘 안되고 세팅도 없는 아파트 거실에서 날마다 연주회가 열린다. 때론 실망스러운 날도 있다. 그럴 땐 좋은 음질의 시디나 SACD의 음질이면 충분히 감동을 느낀다. 실제감을 높이기 위해 볼륨을 약간 더 높여도 이웃에서 항의가 없다. 물론 아내의 내조가 큰 역할을 하였겠지만 요즘에는 아랫집의 영감님 얼굴이 펴져서 인사도 잘 받아주시고 웃음도 보이신다. 아마도 그전엔 소음으로 불편했던 것들이 이젠 간혹 소리가 커도 음악으로 들리니 부담이 되거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으시리라 혼자서만 생각해본다. 진공관과 탄노이의 명성대로 현은 말할 수 없이 실제적이며, 내가 가장 바라던 대편성의 곡을 충분히 소화하여 증폭하고 전달해주고 재생해주는 줄리어드, 시디피, 스피커 덕에 만족스럽게 연주를 즐기고 있다.
그릴을 벗기고 보면 커다란 12인치우퍼에 가운데 꽃처럼 피어있는 트위터가 함께 들어있는 듀얼콘센트릭이 그렇게 이쁘고 탐스러울 수가 없다. 그래 내 아들에게 대를 물려야지 한다. 그러면서 아들 녀석을 보면서 이유 없이 웃는다. ‘녀석 복도 많지, 이렇게 좋은 기계들을 가지고 음악을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복이 많냐?’ 하고서. ‘내가 너무 탄노이만 편애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줄리어드를 쳐다보면 이 녀석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저 녀석이 이렇게 연주하도록 받쳐주고 지휘하고 있지 않은가. 참 정직한 녀석이다. 빠를 땐 빠르게 느릴 땐 느리게, 적을 땐 적은 소리로, 큰 소리는 큰 소리대로, 그대로 표현해준다. 바이올린이 앞에서 울리면 혼이 저 뒤쪽에서 화답한다. 앞에서 나는 소리, 뒤에서 나는 소리, 큰 소리, 아련하게 들리는 소리, 여러 악기들의 조화가 컨서트홀의 분위기를 돋우며 더욱 빠져들게 한다.
바이올린은 연주자의 해석과 정서를 표현해주고 혼은 호쾌하게 가슴을 뚫어준다. 합주의 부분도 시디에 따라 다르지만 아름답다. 하인쯔 홀리거의 오보에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그 부드러움과 따스함과 원숙미를 그대로 전달해준다. 쇼스타코비치를 듣고 있노라면 그가 고뇌하고 불안해하고 아파하고 때론 신경질적으로 변하면서도 변치 않고 음악의 자유, 인간의 이상적 삶에 대한 의지로 곡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러시아 오케스트라는 크고 굳건하며, 깊은 정서가 어둡지만 너른 대지만큼 힘이 넘치고 역동적이며 커다란 스케일로 러시아적 애수와 슬픔을 아름답게 연주를 표현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으며, 비인필은 밝고 사교계의 유희를 즐기는 귀족적인 분위기를 상상하게 해준다. 그뿐인가 명랑하며 개성대로 주장하는 자유분방한 프랑스의 분위기며, 끈질긴 고뇌는 싫다! 자유를 노래하자고 외쳐내는 미국 교향악단들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이런 느낌들은 아주 주관적이며 객관적 평가와는 무관함을 말씀드리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는 줄리어드가 그들의 연주의 감성, 생각, 의도, 그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주며 있는 그대로 지휘를 한다고 느껴진다. 녀석은 자그마한 체구에 무뚝뚝하게 앉아있지만 농익은 오렌지색 불빛을 발하며 맑은 유리박스에서 달구어져 분주히 왕래하는 전자들의 바쁜 왕래로 연주를 훌륭히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간혹 연주를 듣노라면 악기들의 춤에 빠져든다. 그러다가 눈을 돌려 이 녀석을 보노면 녀석도 나름의 춤을 추고 있을 법도한데 가만히 앉아있다. 녀석은 참 무뚝뚝하다. 남아도는 출력과 재빠른 응답성, 아름답고 맑은 음색과 고역, 탄탄한 저역, 음악의 표정과 분위기를 잘 표현해주는 음악성과 센스, 녀석은 춤을 주고 있지 않지만 훌륭한 지휘를 해내고 있지만 다소곳하다.
하지만 때로는 1%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파워앰프와 업글이 간절히 기다려진다. 안정되고 충분한 전압이 이루어지면 더욱 좋을 것이라는 정사장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중대역의 힘과 분위기가 더욱 살고 생동감이 넘쳐흐를 것으로 기대하며 많이 기다려진다.
이 녀석들을 들이고서 아침이면 일찍 출근할 생각이 없어졌다. 한때는 일찍 일어나 듣기도 했지만 요즘은 아침에도 최대한 음악을 듣고서야 출근을 한다. 저녁이면 늘 밤늦게 까지 감상하곤 한다. 어느 덧 시디가 꽤 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위기의 연주자를 식별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 티비는 화면만 보일 뿐 소리는 음악이 채우고 있다. 요즘은 너무 중독증세가 심하다는 생각이 간혹 든다. 한동안은 저녁이면 술 마시는 일조차 하기가 싫어졌다. 저녁에 만나자는 말이 반갑지가 않았다. 음악을 듣고 싶어서. 이러다가 일하는데도 지장이 생길까 걱정도 된다. 이젠 조절 좀 해보려한다. 하루에 조금만 들어도 금단증상이 생기지 않게 말이다.
현재 줄리어드와 탄노이가 나의 애장기이며, 사랑스럽기 그지없고 오래 오래 아껴주고 싶다. 초보청취기를 접으면서 비코에 바란다면 레퍼런스급 모델 개념이 나오면 어떨까 싶다. 언젠가 줄리어드 형님이 나온다면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필하모니커(philharmonicker). 어떻습니까? 음악애호가의 의미도 있지만 단어 그대로 ‘조화 (혹은 교향악)을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그 사람들이 애지중지하며 즐기는 음악기기, 뭐 그런 의미로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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